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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세계

오솔주 2024. 2. 18. 16:01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가 되다.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상실하고, 누구의 아내 혹은 누구의 엄마가 된다. 물론 그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의 남편으로 기억되는 서당(西堂) 김성립(金誠立, 1562~1592)가 그런 예의 하나이다.<불타는 세계>의 주인공 해리엇 버든도 그림에 재능은 있으나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기 전에 뉴욕 미술계를 좌우하는 미술상 펠릭스 로드와 결혼하면서 인생이 뒤틀린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자와 결혼하여 누군가의 아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고 그 부(富)를 누린다는 것은 성공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갈등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남편 때문에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억누르고 한 사람의 아내이자 남매의 어머니의 삶을 살아야 했다. 물질적 풍요를 얻은 대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아마도 유명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의 아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던 이 책의 저자 시리 허스트베트(Siri Hustvedt, 1955~ )의 삶도 여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세상을 조소(嘲笑)하다.미술에 대한 허기와 갈증을 누른 채 남편의 그림자로 살아온 그녀의 삶은 어느 날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다시 변했다. “오랜 친구이자 대화 상대, 섬세하고 의뭉스럽고 독설가에 박애주의자인 친절한 펠릭스는 이제 없었다. 당신 때문에 내 정신이 한계에 다다르겠어! 하지만 그 한계는 결국 오지 않았다. 내 정신도 그의 정신도 멀쩡하게 남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정기적으로 손해보상을 했다. 이젠 더 이상 보상도 수리도 없다. 고칠 수도 없다. 펠릭스는 없다. 나는 그 공백을 이해해보려고 발버둥을 쳤고, 부재가 현실이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런 텅 빈 타자(他者)의 형태를 띠었다. 구멍, 마음 속의 구멍, 그러나 그건 펠릭스라는 이름의 구멍은 아니었다.1)” 남편의 죽음이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자아를 억눌러왔던 금제(禁制)를 제거한 것이었다.그녀는 이제 편견에 가득 차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무시해 온 미술계에 나름의 반격을 계획한다. 바로 남성 페르소나를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다.해리엇 버든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 타인의 이름 혹은 가명으로 작품을 내놓은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에밀 징클라르(Emil Sinclair)라는 이름을 <데미안>을 발표했다.하지만, 해리엇 버든은 무려 3명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금발의 백인 청년인 앤턴 티시의 <서양 미술의 역사>(1998), 흑인 동성애자인 피니어스 Q. 엘드리지의 <질식의 방들>(2002), 룬 라슨의 <저변>(2003). 이렇게 타인의 가면을 쓰고 현대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헤르만 헤세와 달리 그녀가 쓴 가면은 소설 속에서 실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일종의 고스트 라이터 혹은 대필작가(代筆作家)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때문에 그녀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그녀가 생전에 쓴 여러 권의 공책과 그녀와 소통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녀의 삶을 퍼즐 맞추듯이 짜 맞출 수 밖에 없었다. 다이 호우잉[戴厚英, 1938~1996]의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11명의 일인칭 서술을 통해 문화혁명기의 중국 지식인을 그려냈던 것처럼*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시리 허스트베트, <불타는 세계>, 김선형 옮김, (뮤진트리, 2016), p. 55
‘소설’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제까지 소설의 전통이 쏟아낸 그 어떤 전형에도 귀속되지 않는, 문학·인문·예술·신경정신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리 허스트베트만의 지적인 사유와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해리엇은 지성과 미적 감각을 겸비한 예술가이면서도 뉴욕의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미술상 남편과 결혼한 뒤로는 재능과 욕망을 철저히 억누르고 아내로, 남매의 어머니로 살아간다. ‘갈등’을 야기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그녀가 주최하는 파티에서조차 미술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주장은 아예 침묵하거나, 아니면 가끔씩 자제심의 균열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양 극단으로 드러날 뿐이다.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해리엇은 맨해튼 예술계를 도망치듯 떠나 그녀만의 소우주에서 칩거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의 자기 재현을 철저하게 진압해온 세계에 대한 쿠데타를 꿈꾸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불가능했던 가장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저자는 해리엇과 소통했던 18명의 화자를 내세워 해리엇의 내면, 그녀의 의식과 본질적 정체성을 탐색한다. 온 세계를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 정도로 파괴적인 그녀의 삶과 작품은 그녀가 남긴 흔적들의 점을 연결해 맥락 속에 집어넣는 ‘편집자’라는 캐릭터의 노고를 통해 의미를 갖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그 편집의 결과물인 이 소설을 읽는 우리들, 독자들의 해석을 통해 완성된다.

이 책은 소설에서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라는 화자의 서문을 필두로,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다른 화자의, 다른 시선의 텍스트가 동원되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매우 지적이고 정교한 작품이다.


편집자 서문 15
해리엇 버든 공책 C 31
신시아 클라크 40
메이지 로드 44
해리엇 버든 공책 C 52
오즈월드 케이스 72
레이철 브리프먼 84
13의 요약서 95
해리엇 버든 101
로즈메리 러너 115
브루노 클라인펠드 123
메이지 로드 138
스위트 오텀 핑크니 156
앤턴 시티 170
레이철 브리프먼 173
피니어스 Q. 엘드리지 190
예술과 생성의 몇 가지 의미들을 향한 알파벳 225
해리엇 버든 공책 B 228
브루노 클라인펠드 253
오즈월드 케이스 273
바로미터 299
메이지 로드 303
패트릭 도넌 321
재커리 도트문트 323
해리엇 버든 공책 K 325
해리엇 버든 공책 A 330
해리엇 버든 공책 M 335
해리엇 버든 공책 T 339
해리엇 버든 공책 O 345
레이철 브리프먼 376
피니어스 Q. 엘드리지 392
리처드 브릭먼 401
윌리엄 버리지 410
다른 곳에서 온 급보 423
해리엇 버든 공책 D 431
해리엇 버든 공책 O 435
메이지 로드 445
브루노 클라인펠드 451
티모시 하드윅 475
커스틴 라슨 스미스 480
해리엇 버든 공책 U 498
해리엇 버든 공책 O 505
해리엇 버든 공책 D 507
해리엇 버든 공책 T 516
스위트 오텀 핑크니 529


 

원숭이는 왜 엉덩이가 빨개요?

이 책 정말 물건이예요 ^^이미 책 두권이 있어서 시리즈인 책을 골라 구매한건데정말이지 최고의 책인 것 같아요 제가 몰랐던 것들도 많이 배우게 되고 ㅋㅋ애들도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고 뭐니뭐니해도 ㅋ.ㅋ 정말 알쏭달쏭한 것들이 많아서아이들과 흡족하게 퀴즈내며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진짜 재미나요 ㅋ_ㅋ 6-7살 딱 좋을꺼 같습니다!엄마가 묻고, 아이가 대답하고 ^^ 그렇게 하면, 여름방학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안흥ㄹ까 싶어요그런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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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정치

식민지시기 조선의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 연구서적들을 많지 않았고, 더러 있더라도 어려운 용어들이 사용되어져서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이화진 작가의 소리의 정치 는 기존에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꽤 많이 접하게 해 준 책이었다. 조선에서 극장 이라는 공간은 상당히 복합적인 존재였고, 많은 것을 체험하게 해 주는 곳이었다. 근대 이전까지 우리는 한 곳에 많은 인원이 모여서 동일한 경험을 체득할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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